청록색 호수를 따라 굽어 도는 길과 초록 언덕 위의 목조 집들. 스위스의 고갯길은 이런 호숫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위스는 국토의 약 60%가 알프스인 나라입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봉우리와 빙하 아래로 맑은 호수와 깊은 골짜기가 이어지고, 그 사이를 오래된 고갯길이 넘어갑니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시어 네 가지 말을 쓰는 나라라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말과 음식이 바뀌기도 합니다.
나라 전체에 번호가 붙은 자전거 길과 산악자전거 길 표지가 촘촘하게 깔려 있고, 기차와 배, 우편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습니다. 긴 오르막을 모터가 받쳐 주는 e-MTB라면 하루에 고개 하나를 넘고,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타는 여행을 어렵지 않게 계획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표 코스인 인터라켄 고갯길을 중심으로, 처음 가는 사람이 고르기 좋은 다섯 지역의 길과 볼거리를 정리했습니다. 고갯길은 대부분 포장도로이고, 산길은 자전거가 허용된 길만 골랐습니다.

베른주 · 인터라켄 약 570m → 그로세 샤이데크 약 1,962m
인터라켄 고갯길, 그로세 샤이데크
- 거리
- 인터라켄~마이링겐 약 50km
- 일정
- 하루
- 길
- 좁은 포장 고갯길
- 난이도
- 상급
인터라켄은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있는 마을로, 융프라우 지역 여행의 출발점입니다. 이 코스는 인터라켄에서 그린델발트로 올라간 뒤, 해발 약 1,962m의 그로세 샤이데크 고개를 넘어 반대편 마이링겐으로 내려갑니다. 오르막만 약 1,400m로, 다섯 코스 가운데 가장 힘든 날입니다.
그린델발트를 지나면 길이 좁아지고, 그로세 샤이데크를 넘어 슈바르츠발트알프까지는 일반 차가 다닐 수 없어 우편버스와 자전거만 다닙니다. 자동차 소리 없이 아이거 북벽과 베터호른의 거대한 바위벽을 바로 옆에 두고 오를 수 있어, 스위스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길입니다.
고개를 넘으면 숲과 목초지 사이로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고, 로젠라우이를 지나 마이링겐에 닿습니다. 힘이 남으면 브리엔츠 호숫가를 따라 인터라켄까지 달려 약 80km를 한 바퀴로 마칠 수 있고, 지쳤다면 마이링겐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됩니다.
볼거리
아이거 북벽
그린델발트 쪽에서 올려다보면 해발 약 3,967m 아이거의 북쪽 바위벽이 하늘을 막듯 서 있습니다. 오르막 중간에 자주 멈춰 뒤를 돌아보세요.
그로세 샤이데크 고개
고개 위에서는 베터호른이 바로 머리 위로 솟아 있고, 지나온 그린델발트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고개의 산장에서 쉬어 가기 좋습니다.
라이헨바흐 폭포
마이링겐 근처의 큰 폭포로, 셜록 홈스가 모리아티 교수와 싸운 곳으로 소설에 나옵니다. 아래에서 작은 산악 열차를 타고 폭포 가까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브리엔츠 호수
빙하 녹은 물이 모여 청록색으로 빛나는 호수입니다. 호숫가 마을 브리엔츠는 나무 조각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베른주 · 라우터브루넨 해발 약 800m
라우터브루넨 폭포 계곡
- 거리
- 인터라켄 왕복 약 40~55km
- 일정
- 당일
- 길
- 포장도로 + 짧은 자갈길
- 난이도
- 초급
라우터브루넨은 수백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바위벽 사이에 놓인 U자 모양 골짜기입니다. 빙하가 깎아 만든 골짜기라 바닥은 평평하고, 양쪽 절벽에서 수십 개의 폭포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폭포 72개의 계곡'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인터라켄에서 계곡 입구까지는 강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고, 라우터브루넨 마을부터 계곡 끝 슈테헬베르크까지는 거의 평지입니다. 오르막이 적어 첫날 자전거에 익숙해지기 좋은 코스이고, 폭포가 나올 때마다 멈춰 사진을 찍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절벽 위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마을 뮈렌과 벵겐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나 기차로 올라갈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계곡 너머로 융프라우 연봉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자전거로 오르는 대신 기차를 타고 올라가 마을을 걸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볼거리
슈타우프바흐 폭포
라우터브루넨 마을 바로 옆 절벽에서 약 300m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입니다. 바람이 불면 물줄기가 안개처럼 흩어집니다.
트뤼멜바흐 폭포
산속 바위 틈으로 빙하 녹은 물이 쏟아지는 폭포입니다. 산 안에 놓인 승강기와 계단으로 올라가며 볼 수 있어, 자전거는 입구에 세워 두고 걸어서 둘러봅니다.
뮈렌과 벵겐
절벽 위 차 없는 산악 마을입니다. 목조 샬레 사이를 걸으며 맞은편 설산을 바라보세요.
베른주·발레주 · 그림젤 고개 약 2,164m, 푸르카 고개 약 2,429m
그림젤·푸르카 고개와 론 빙하
- 거리
- 마이링겐~그림젤 고개 약 37km
- 일정
- 1~2일
- 길
- 포장 고갯길
- 난이도
- 상급
스위스 고갯길의 전설로 불리는 길입니다. 마이링겐에서 아레강을 거슬러 올라가 화강암 바위산 사이로 그림젤 고개에 오르면, 오르막이 약 1,600m에 이릅니다. 고개 주변에는 수력 발전용 댐이 만든 호수들이 회색 바위 사이에 놓여 있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풍경입니다.
그림젤 고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굽잇길이 이어지며 글레치 마을에 닿고, 그 위로 론강이 시작되는 론 빙하가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푸르카 고개로 오를 수 있습니다. 두 고개를 하루에 넘는 것은 매우 힘드니, 체력에 맞춰 하나만 넘거나 1박 2일로 나누세요.
높은 고갯길은 눈 때문에 대체로 6월쯤 열려 10월쯤 닫히고, 해에 따라 날짜가 달라집니다. 돌아올 때는 고개를 넘는 우편버스나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지만, 자리가 한정된 경우가 많으니 미리 확인하세요.
볼거리
아레 협곡
마이링겐과 인너트키르헨 사이, 강이 바위를 깊게 깎아 만든 좁은 협곡입니다. 절벽에 붙여 만든 나무 길을 걸어서 지나갑니다.
그림젤 고개의 호수들
고개 위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그 아래로 댐이 막은 큰 호수들이 이어집니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위산이 물에 비칩니다.
론 빙하
론강이 시작되는 빙하입니다. 여름마다 빙하 안에 얼음 동굴을 파고, 녹는 것을 늦추려고 빙하 일부를 흰 천으로 덮어 둡니다. 빙하가 줄어든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레치의 굽잇길
그림젤과 푸르카 두 고개에서 글레치 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산비탈에 지그재그를 그립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이 코스의 대표 풍경입니다.
루체른주·옵발덴주 · 브뤼니히 고개 약 1,008m
루체른에서 브뤼니히 고개를 넘어
- 거리
- 루체른~인터라켄 약 70km
- 일정
- 하루
- 길
- 포장 자전거길 + 일부 자갈길
- 난이도
- 중급
스위스 한가운데의 호수 도시 루체른에서 출발해, 호수 몇 개와 낮은 고개 하나를 지나 인터라켄까지 가는 길입니다. 루체른 호수 남쪽으로 빠져나가 자르넨 호수를 지나면, 길은 숲과 목초지 사이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오르막은 룽게른 호수 앞에서 한 번, 브뤼니히 고개 앞에서 한 번 옵니다. 고개 높이는 약 1,008m로 높지 않지만 짧고 가파른 구간이 있어 e-MTB가 잘 맞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브리엔츠 호수까지 내리막이 이어지고, 호숫가를 따라 인터라켄에 닿습니다.
알프스 고갯길에 도전하기 전에 몸을 풀기 좋은 코스이고, 같은 길을 따라 루체른과 인터라켄을 잇는 기차가 있어 지치면 중간에 기차를 타도 됩니다.
볼거리
카펠교
14세기에 처음 놓인 지붕 덮인 나무다리로, 지붕 안쪽에 옛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1993년 화재로 크게 불탄 뒤 다시 지었습니다. 출발 전에 걸어서 건너 보세요.
빈사의 사자상
1792년 파리에서 목숨을 잃은 스위스 근위병을 기리려고 바위벽에 새긴 사자상입니다. 시내에서 가까워 아침 일찍 들르기 좋습니다.
룽게른 호수
숲과 초록 언덕에 둘러싸인 청록색 호수입니다. 호수 위쪽 길에서 내려다보는 물빛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브리엔츠 호숫가
고개를 내려오면 만나는 맑은 호수입니다. 호숫가 벤치에서 쉬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좋습니다.
보주 · 로잔~몽트뢰, 해발 약 370~600m
라보 포도밭과 레만 호수
- 거리
- 로잔~몽트뢰 약 30km
- 일정
- 당일
- 길
- 포장도로 (포도밭 언덕길)
- 난이도
- 초급~중급
스위스 서쪽,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의 레만 호수 북쪽 기슭입니다. 로잔 동쪽에서 시용성까지 약 30km에 걸쳐 호수를 향한 비탈에 돌담으로 쌓은 계단식 포도밭이 이어지는데, 11세기 무렵 수도원에서 가꾸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7년 '라보 포도밭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호숫가 큰길은 평평하지만, 이 코스의 재미는 포도밭 사이 언덕길에 있습니다. 작은 와인 마을들을 잇는 좁은 포장길을 오르내리면 발아래로 호수와 건너편 프랑스 쪽 알프스가 펼쳐집니다. 경사가 꽤 가파른 곳이 있어 e-MTB가 큰 도움이 됩니다.
알프스의 높은 고갯길과는 다른, 따뜻하고 여유로운 스위스를 보여 주는 길입니다. 호숫가를 따라 기차가 다녀서 원하는 곳에서 일정을 마치기도 쉽습니다.
볼거리
포도밭 언덕길
돌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포도밭 위로 올라가면 호수 전체가 내려다보입니다. 와인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이 지역 샤슬라 와인을 맛볼 수 있습니다.
브베
찰리 채플린이 말년을 보낸 호숫가 도시로, 호숫가에 채플린 동상이 서 있습니다. 호숫가 산책로에서 쉬어 가기 좋습니다.
몽트뢰
매년 여름 재즈 축제가 열리는 호숫가 도시입니다. 호숫가에는 가수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있습니다.
시용성
호숫가 바위섬 위에 지은 중세 성입니다. 몽트뢰에서 호숫가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나오고, 성 안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떠나기 전에 알아 두면 좋은 것
언제 가면 좋을까
6월부터 9월까지가 좋습니다. 높은 고갯길은 대체로 6월쯤 열려 10월쯤 닫히고, 7~8월이 가장 따뜻합니다. 호숫가 낮은 지역은 5월과 10월에도 달리기 좋습니다.
고도와 날씨
고도가 1,000m 오를 때마다 기온이 약 6도씩 내려갑니다. 호숫가에서 반팔로 출발해도 고개 위에서는 바람막이와 장갑이 필요합니다. 여름 오후에는 산에서 천둥 번개가 잦으니 높은 곳은 오전에 지나가세요.
길과 자전거
자전거 길과 산악자전거 길에 번호가 붙은 안내 표지가 따로 있습니다. 등산로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는 지역마다 다르고 금지된 곳도 많으니, 표지가 있는 자전거 길과 산악자전거 길만 달리고 걷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세요. 기차와 우편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때는 자전거 표가 따로 필요합니다.
먹을거리
감자를 부쳐 낸 뢰스티, 치즈 퐁뒤, 녹인 치즈를 감자에 얹어 먹는 라클레트, 감자와 마카로니를 치즈에 버무린 알플러마그로넨이 대표 음식입니다. 물가가 높은 편이라 점심은 슈퍼마켓에서 사서 호숫가에서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요일에는 기차역 가게를 빼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습니다.
돈과 통신
화폐는 유로가 아니라 스위스 프랑(CHF)입니다. 카드는 거의 어디서나 받습니다. 휴대폰은 산골짜기까지 잘 터지는 편이지만, 스위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어서 유럽용 요금제가 스위스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하세요.
입국과 안전
스위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은 아니지만 솅겐 협정 국가입니다. 입국 조건은 국적과 시기에 따라 바뀌니 출발 전에 대사관 안내를 확인하세요. 헬멧은 꼭 쓰고, 터널이 있는 고갯길에서는 앞뒤 라이트를 켜세요.
스위스의 길은 오르막은 길지만,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빙하와 호수가 상으로 주어지는 길입니다. 지친 날은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 쉬어 가도 괜찮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을 고개에 쓰고, 흐린 날은 호숫가 마을에서 천천히 보내세요.
이 길을 달릴 자전거가 필요하다면
날짜를 고르면 빌릴 수 있는 e-MTB를 바로 보여 드려요.
